구약 연구 2026년 4월 24일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 정말 “무서워하라”는 뜻일까요?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을 야레, 포보스, 자녀의 두려움, 코람 데오, 욥기의 관점에서 차근히 살펴봅니다.

잠언경외코람 데오욥기
웅장한 산맥과 하늘

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는 당혹스러운 긴장과 마주합니다. 한편에서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반복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분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고 벌벌 떨어야 한다는 뜻일까요? 오늘은 이 “거룩한 두려움”의 의미를 언어적, 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야레와 포보스: 단어 속에 담긴 중의적 의미

우선 성경 원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경외”가 단순한 공포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사용되는 히브리어 “야레”는 넓은 의미의 스펙트럼을 가집니다. 문맥에 따라 공포를 뜻할 수도 있지만, 예배, 숭배, 경건한 두려움, 존경의 의미로도 쓰입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19장 3절에서 “부모를 경외하라”고 할 때, 이는 부모를 무서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존중하고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신약에서 사용되는 헬라어 “포보스” 역시 영어 “phobia”의 어원이 되는 단어이지만, 성경 문맥에서는 압도적인 경외감으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셨을 때 사람들이 느꼈던 두려움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을 목격한 경탄이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경외는 “공포심”이라기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는 데서 오는 거룩한 두려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종의 두려움과 자녀의 두려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현대 신학자 R.C. 스프로울은 두려움의 종류를 구분해 설명했습니다. 핵심은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항상 같은 관계를 뜻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먼저 노예적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는 죄수가 처벌자를 두려워하거나, 종이 잔인한 주인에게 매를 맞을까 봐 떠는 공포에 가깝습니다. 형벌에 대한 공포이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상태에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반면 자녀적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는 자녀가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아버지를 실망시키거나 그 마음을 아프게 할까 조심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에 근거한 존경이며, 신자가 하나님께 가져야 할 경외의 핵심에 더 가깝습니다.

진정한 경외심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거룩함 앞에 압도되어,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만듭니다.

넓은 산과 하늘을 바라보는 풍경
성경의 경외는 도망치게 하는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의 크심 앞에 서게 하는 거룩한 감각입니다.

3.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관념적인 감정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개념이 “코람 데오”, 곧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시고 평가하신다는 사실을 늘 인식하며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의 태도임을 뜻합니다.

또한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다른 두려움으로부터 보호받는 피난처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가장 높이 존중하는 사람은 세상을 절대화하지 않게 됩니다.

경외는 윤리적 민감성으로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의식은 비밀스러운 죄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거룩한 양심의 파수꾼이 됩니다.

4. 욥기를 통해 보는 경외의 깊이

욥기는 까닭 없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다룹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의 설명도 충분하지 않았고, 자신의 의로움에 대한 항변도 문제를 완전히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폭풍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의 압도적인 위엄과 창조의 신비를 대면한 뒤,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에게 경외는 자신의 도덕적 무결함을 주장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장엄하심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과 두려움의 신비로운 조화

결국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그저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리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은 형벌에 대한 공포를 내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거룩한 전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 안에서 더 깊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앞에서 벌벌 떠는 종으로만 머물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크심을 즐거워하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따르는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하루, 우리를 지켜보시는 사랑 많은 하늘 아버지의 눈길을 의식하며 정직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 그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의 복된 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무서워하라는 뜻인가요?

성경이 말하는 경외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과 권위를 알고, 존경과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서는 태도입니다.

종의 두려움과 자녀의 두려움은 어떻게 다른가요?

종의 두려움은 형벌을 피하려는 공포에 가깝지만, 자녀의 두려움은 사랑하는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존경과 조심스러움에 가깝습니다.

코람 데오는 무엇을 뜻하나요?

코람 데오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으로,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신앙적 태도를 가리킵니다.